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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농주의>
18세기 중엽까지 프랑스는 절대군주체제하에 농민이 전체인구의 90%를 점하는 유럽 제일의 농업국가였다. 그런데 왕정은 사치산업과 상업 및 무역만을 중시하는중상주의정책을 실시하여 농업이 경시되었다. 한편 농민들은 75%에 달하는 놓은 소작료, 과중한 조세,전쟁 등으로시달려 농업이 피폐하게 되었고, 상업과 공업도 국가의 간섭으로 인하여 발전이 저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18 세기 후반 프랑스의 F.케네를 중심으로 중농주의가 전개 되었다. 이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희생으로 강행되고 있는 중상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전개되었는데, 농업을 유일한 생산적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농업의 자본주의화'(영국형 대농 경영제도의 창출)에 의해 농업을 파멸상태에서 절대왕정의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번째, 계속적인 전쟁으로 인해 출생율이 저하하고 사망율이 증가 하였고, 지나친 사치에 의해 프랑스정부의 재정파탄 위기가 왔다. 두번째, 프랑스 상업과 공업의 약화되었다. 세번째,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이 실패하였다. ·저물가정책 저곡가 정책 및 자유로운 유통금지 하였고, 농업자본의 축적을 저해하여 농민경제의 몰락을 가져왔다. 또한 특권계급인 신흥 상공업자가 부상 하였고, 국왕이나 봉건귀족층의 세력에 도전, 농민분해를 가일층 촉진시켰고 농촌경제의 새로운 핍박요인으로 등장하였다. 네번째, 농민에게 가혹한 조세 부담을 주었다. 직접세, 인두세, 십분의 일세, 이십분의 일세 등을 부과하였다. 중농주의는 사상적으로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자연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연법사상"과 "계몽주의"Philosophy of Enlightment)의 영향을 받고 있다. 자연이 스스로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사회도 개인의 자유에 맡겨질 때 이상적인 상태로 된다고 하는 이들의 관점은 중상주의적 개입과 규제를 비판하는 중농주의의 논거가 된다. 자연법 사상에 바탕을 둔 인간사회의 자연적 질서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 질서가 전면적으로 실현되었을 경우의 '위대한 왕국'을 상정한 것이다. 경제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 경비 이상의 잉여(순생산)를 낳는 유일한 생산계급인 농민과, 사회적으로 유용하기는 하나 비생산적인 상공업자, 농민의 잉여를 지대로서 받아가는 지주의 3대 계급 사이에서 해마다 총생산물, 즉 부가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가를 재생산과정으로써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케네는 최초의 이론적 분석인 《경제표(經濟表)》를 작성하였다. 이 착상은 경제학의 성립에 중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자유방임정책의 입장에서 곡물수출의 자유 및 가격통제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또 지주계급이 받는 순생산은 일국의 재생산과정을 손상함이 없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수입이므로 그 수입에 대해서만 과세를 해야 한다는 단세론(單稅論)을 주장하여 구(舊)제도하의 영주(領主)계급의 면세특권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스미스경제학이 프랑스에 도입되면서부터 중농주의는 영향력을 잃고, A.튀르고의 실각과 더불어 그들의 활약도 끝났다. 이 학파의 공헌 중 하나는 부를 금이나 은의 양과 같이 축적된 양(stock)으로 보지 않고 일정한 기간 동안 산출된 양(flow)으로 본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國富라고 한 것은 중농학파의 부에 관한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으로서 오늘날의 GDP혹은 GNP에 해당한다. 중상주의는 경제이론에 있어 중상주의의 유통주의적인 오류를 비판하고 고찰의 대상을 유통면으로부터 생산면에 놈으로써 사회의 근본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중농주의는 위로부터의 개혁은 농민이나 시민의 저항운동을 야기시키고 이와 더불어 중농주의의 최초를 맞게 하였다. 결론적으로 볼 때 중농학파의 경제학은 고전학파 경제학으로 이어져 자본주의적인 경제이론으로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중농학파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야기된 프랑스 혁명의 전통은 19세기에 등장하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운동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할수있겠다. ....나는 중상주의도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중농주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기위해서는 생활의 편리함 보다 먼저 우선적으로 음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걱정없이 보충해 주는 부분이 농업이라고 볼 수있다. 사람들은 농업을 우습게 여긴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러나 중농주의가 시민으로부터 시작된게 아니라는게 아쉽다. 인용된 자료 http://blog.naver.com/webjupiter.do?Redirect=Log&logNo=80005480420 http://100.naver.com/100.php?id=141435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11&dir_id=110101&docid=48043 <4. 중상주의> 근대자본주의가 산업혁명에 의해 지배를 확립하기까지의 초기 단계에서 원시적 축적을 수행하는 데 사용된 여러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이론체계이다. 경제정책으로서의 중상주의의 핵심은 초기 산업자본을 위해 국내시장을 확보하고, 국외시장을 개척할 목적으로 수행되는 보호주의 제도로서 외국제 완제품의 수입금지와 제한, 외국산 원료의 수입장려, 국내상품의 수출장려, 국내원료의 수출금지 등의 조치를 직접 입법 및 관세정책으로 실행하였다. 이것은 절대왕정이 타도되어 산업자본이 국정을 지배하게 되는 명예혁명(1688) 때부터 약 100년 사이에 걸쳐 원시적 축적의 체제로서 추진되어 온 정책이다. 경제이론으로서의 중상주의를 보면, 근대자본주의는 아직 생산부문까지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하였으므로 중상주의자들은 이윤이 기본적으로 생산과정이 아닌 유통과정에서 발생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일반적 등가(等價)로서의 귀금속이야말로 부(富)의 본원적 형태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귀금속의 원산지 이외의 지방에서는 외국무역만이 그 획득수단이었으므로 무역차액이 순(順:플러스)이 되게 하는 것이 정책의 중심목표로 추구되었다. 수단으로서 직접무역통제에 의한 개별적 차액의 확보책인 중금주의(重金主義)가 주장되다가, 후에 이에 대한 비판으로서 궁극목표인 총차액은 개별적 통제의 완화에 의해 오히려 증대된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보호주의의 이론을 전복하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이 중상주의 사상의 주류는 단순히 무역차액이나 산업보호라는 관점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국내시장 확대와 자본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유효수요(有需要)의 분석에도 진전을 보여 마침내는 화폐경제이론의 초기적 체계를 완성시켰으며, 한편으로는 고전학파의 전사(前史)로서는 W.페티의 노동가치설이나 D.데포의 자유무역론까지 포함하고 있다. 부르봉 절대왕정하에서의 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책은 산업 ․무역통제로 유명한 콜베르의 이름을 따 콜베르티슴이라고 하며, 신성(神聖)로마제국에 속하였던 18세기 독일의 여러 영방(領邦)의 재정정책은 관방주의(官房主義)라는 형태를 가진 절대주의적 중상주의 체계하에 있었다. 중상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시민혁명과 더불어 해체되고, 이론적으로는 A.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1776)의 출판과 함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중상주의 정책을 살펴보면중상주의의 최대목표는 ‘국가의 힘’을 증대시키는데 있었다. 이것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수구해야 할 시대적 과제였다. 중상주의자들은 국가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추기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국가의 부를 중진시켜 이를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경제정책적 측면에서 중상주의자들의 목표는 국가의 경제적인 부를 증대시키는데 기여할수 있는 경제의 제영역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 이었다. 중상주의 시대의 모든 정책은 바로 이 경제적 성장과 부에 관한 상대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중상주의 제국들은 국부증대를 위한 무역차액을 유지하기 위해 수출을 장려하고 수 입을 억제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특히 철저한 무역정책을 실시한 영국 이 대표적 국가였다. 이러한 정책을 위한 시책으로는 수출세 경감제도, 수출보조금, 관세환급, 독점 및 특권제도, 수입관세등이 있다. 수출세 경감제도는 자국상품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수출상품에 대한 수출세를 경 감하거나 전폐한 제도이고, 수출보조금은 외국인이 영국상품의 질이나 가격이 마음 에 들지 않아 구매하기 꺼릴 때 외국인이 그것을 사가도록 정부가 그 값을 대신 치 러 주는 것이며, 관세 환급은 상품을 재수출한다는 조건하에 수입을 해오는 상인 에 대하여 관세를 면제해주거나 저율의 관세만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하면 중간무역 을 위한 상품수입이나 수출을 위한 원료구입등이 해당된다. 그리고 독점 및 특권제 도는 정부가 대회사에게 독점이나 특권을 부여하여 상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것이며 소수인에게 특허 회사를 설립케하여 무역상의 특권을 인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무역 에 대한 통제가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다. 수입관세는 무역흑자유지를 위한 중상주 의자들의 외국상품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라 할수 있으며 외국상품에 대해서는 철 저하게 공격적이었다. 중상주의시대의 수출입 관세정책은 이전까지의 지방적이고 다양한 제도를 전국적인 범위에서 통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서 중상주의자들은 외국의 경쟁상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 외에 대내적으로 철저한 통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정책 의 시책으로는 가격통제, 품질통제, 사치금지법, 독점 및 특권제도등이 있다. 가격통 제는 상품에 대한 가격을 정부가 개입하여 통제하는 것을 말하며, 품질통제는 무역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공산품의 질에 대한 통제를 한 것으로서 17세기에 프랑스의 꼴베르(J.B. Colbert)가 대표적인 실천자이다. 또 사치금지법은 여러 상품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수입상품을 제한하고 국내경쟁업체를 위한 시장을 육성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사차금지법들은 영국의 경우 담배, 차, 설탕등이 규제 대상품목이었고 사람이 죽은 후 수의도 양모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법 이며, 독점 및 특권 제도는 정부가 직접 경영하는 사업체의 감시 제조업자 등 소수 인에게 사업상의 독점적인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생산비를 줄이기 위한 정 책으로 노동자의 생활비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상품의 가격통제와 최고 임금제등을 실시하여 저임금정책을 고수 하였다. ....중상주의든 중농주의든 먹고 살기위해서는 농업도 필요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상업도 필요하다. 여기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중상주의 정책의 치우침이 아닐까? 수출만을 장려하고 식민지 확보에만 힘을 쓰고 결국 여기서도 정치인들이란 자신들의 절대왕정을 뒷받침하기위한 상비군과 관료제를 지탱하기 위해서 나온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정책인거 같다. 상공업이 중요한 만큼 농업도 중요하다는걸 그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상공업도 중요하다는 걸 무시할 순 없다. 다만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용된 자료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docid=247730 http://blog.naver.com/ramsses00.do?Redirect=Log&logNo=40004136270 http://100.naver.com/100.php?id=141596 # by 매력주둥이 | 2004/09/24 04:3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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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제부턴 남얘기 안해..
by 매력주둥이 at 01/07 당황스럽고 무섭다...... by ⓜⓘⓝⓐ at 01/06 아,법정 스님의 글이네.. by 천일야화 at 01/06 ㅋㅑ~ by 매력주둥이 at 01/06 아직도 병원안가고 뭐한.. by 매력주둥이 at 01/03 저배에 타고있던게 바로.. by 이쁜엉덩이 at 01/02 총총 거리면서 갈필욘 .. by 매력주둥이 at 01/01 윤경아~~~ 달력은 피.. by ⓜⓘⓝⓐ at 12/31 우와.. 멋지다.. 겨울.. by rick at 12/31 니 마음과 정신은 내가 잡.. by ★쥬나★ at 12/26 ㅋㅋㅋ설마 윤경이 겟어.. by ★쥬나★ at 12/26 황윤경!! 대박 놀랐어... by 김아영 at 12/26 아니 예쁠것 같은데요:) by 열혈인생 at 12/26 미안~키득키득 사기좀 .. by 매력주둥이 at 12/25 이거누구야?너야? 말도.. by 이쁜엉덩이 at 12/25 skin by 이글루스 | ||||||||